오늘의 행복한 경영 이야기

다른 사람들이 물러날 때 나는 나아가고(人退我進),
다른 사람이 얻으려 할 때 나는 포기한다(人取我棄).
1960년대 말 부동산 사업을 시작할 때 내건 부동산 거래 철학이다.
실제로 경기불황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할 때나는 매입에 나섰으며
경기가 좋아지자 이를 팔아 M&A에 나섰다.
- 청쿵그룹 리카싱(리자청) 회장

리카싱 회장의 비즈니스 모토는 안정을 유지하면서 전진하고,
전진하면서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라 합니다.
그는 업무 시간 중 90% 이상을 5년,
10년 후를 생각하고 준비하는 데 쓴다고 말합니다.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사람만이 현재를 제대로 읽고,
남과 다르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Posted by 탄재
돈이 아니다


삶의 중심은 돈이 아니다.
삶의 중심은 사랑이며, 가족이며, 인간관계다.
개인적 발전이며, 배움이며, 성장이다.
치과의사인 내 친구가 옛날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기 치아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늙어서 치아를
생각하는 데 시간을 죄다 쏟게 되지."
돈도 마찬가지다.
돈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백만장자가 되지 못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 리처드 폴 에반스의《나의 백만장자 아저씨》중에서 -

오늘 아침 고도원의 아침 편지.
Posted by 탄재
한국 리더십 센터의 리더십 웹진에 실린 글 '동료, 상사와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법'은 제목에서 쉽게 상상되는 내용이 아니라 질문을 통한 관계 형성에 대한 것이다. 이 글은 고착된 마인드세트를 가진 사람은 하기 힘든, '부족함을 고백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성공한 한국의 경영자들의 공통점 중 한가지는 "많이 좀 도와 주세요"라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이다.
오래 전에 해외에서 동문수학 했던 모 대기업 총수의 사장시절, 그를 면담하고 감동한 적이 있었다. 사실 그가 젊은 나이에 사장직을 맡게 된 것은 자신의 능력보다는 부친의 후광 덕분일 것이라고, 결국 경영능력이 썩 탁월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회사가 눈에 띄게 승승장구 하는 것을 보고 '뭔가 있구나' 하고 궁금하게 여기던 차에 그를 만나는 기회가 있었다. 그 대화는 그를 향한 오해를 싹 사라지게 했고 회사가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면담 내내 나의 근황을 물으면서 나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을까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에게서 "우리 회사를 많이 도와 달라"고 반복하여 부탁을 받으면서 그에 대한 대학원 시절의 부정적인 시각이 사라지고 호감이 생겼다.

더불어 사는 것이 사람
  한자로 사람 인(人)은 상호간에 서로 기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인간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상부상조해야 효과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고래(古來)로부터 자명하게 강조하고 있으며, 기댈 수 있도록 어깨를 내어주고 도와주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을 나타내는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님은 "사람들은 그들이 잘 아는 것을 물어주거나 도움을 청하면 기꺼이 가르쳐 주면서 너에 대한 호감도 갖게 된다"고 하시면서 많이 묻고 도움 받기를 가르치셨다. 어렸을 때는 이 가르침에 따랐던 것 같기도 한데 언제부터인가 '도움 요청은 패배자나 약자가 하는 것이며 '나' 아닌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으니 가급적 혼자서 모든 것을 해 내야 된다'는 생각이 각인 되었고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인심이 각박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15년 전 리더십교육을 받으면서 수신(修身)한 사람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 수 있으며 자신의 부족함도 인정할 수 있기에 타인의 도움을 자신 있게 요청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배우는 순간, 어린 시절 어머님의 가르침이 떠 올랐고 그 때부터 배우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였다. "내가 나이가 있어 젊은 세대를 잘 모르니 도와 달라.", "내 혼자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 제한 될 수 밖에 없으니 서로 토론 해 보자.", "자네의 도움이 많이 기대되네.", "이것은 잘 모르니 많이 도와 주세요." 등등.

부족함을 고백하고 도움을 청하라
  지난 달, 제휴회사에서 하는 리더십 교육을 경험하기 위하여 교육생이 되어 미국에 다녀왔다. 6일간의 교육은 언어문제에 더하여 밤낮이 바뀐 시차 때문에 쉽지 않았다. 게다가 30~40대의 미국 젊은이들과 5인 1실 방에서 합숙을 하면서 아침 8시에 시작하여 저녁 9시에 끝나는 강행군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괴로웠던 것은 3일째 되던 날 참가자 22인 전원의 투표를 통해 각자의 성향을 꾸밈없이 알려주는 순서였다. 긍정적인 것도 많았지만 위험스러움, 괴팍함, 오만함, 바보스러움 등의 부정적인 성향 또한 알려주어 대인관계를 개선 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었기에 가장 선배인데다가 유일한 동양 남성인 내가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 평가였다. 나는 첫날부터 자신의 많은 부족함을 이야기하면서 여러 가지 도움을 간청하였다. 그 결과 참가자 대부분이 내가 지혜롭고 멋있으며 진지함과 유능함, 적당한 권위를 가진 비전의 소유자로 평가 한 것이 아닌가. 과거의 나처럼 아는 체 하고 완벽한 인간인 체 행동했더라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평가였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책을 읽고 있는, 싱가포르까지 간다는 옆 자리 신사에게 책 내용에 관해 알고 싶다고 요청했다. 그 책을 작년부터 읽고 싶었지만 게을러서 못 읽었다고 솔직하게 말하면서 말이다. 그는 30분 이상 책 내용을 설명해주면서 다음에 샌프란시스코에 오면 자기집에서 자라고 하면서 명함을 내미는 것이었다.

  가정에서 배우자나 아이들에게 그들이 잘 알고(가수, 연예인 등) 잘 할 수 있는(게임, 운동 등)것을 묻거나 도움을 요청 해 보라.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 질것이다. 직장에서도 상사나 직원들(부부관계, 자녀교육, 영업방법 등)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라. 대인관계가 크게 개선 되고 팀워크가 끈끈해지며 시너지가 일어나서 생산성이 크게 향상될 것이다.


김경섭

E-Mail : kengimm@eklc.co.kr

한국리더십센터 회장


Posted by 탄재
용기를 내어 그대가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 폴 발레리

'대한민국 개발자 희망보고서'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위의 글은 이 책의 저자 오병곤님의 좌우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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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like a postage stamp. Stick to one thing until you get there." — Josh Bill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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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오후

카테고리 없음 2007. 1. 19. 10:30
구본형 변화 경영 연구소 한명석님이 보내 온 메일을 읽자니, 이제 마흔이 멀지 않은 내 마음에 느끼는 바가 많다. 오후 햇살을 좋아하는 나. 이제 내 인생의 아름다운 오후를 준비해야겠다.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다.

"나와 함께 나이들어가자!
가장 좋을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인생의 후반, 그것을 위해 인생의 초반이 존재하느니.”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 중에서-


속담에 ‘늙은 쥐가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젊은이의 열정보다는 체험에서 오는 연륜이 웃길이라는 얘기일 것입니다. 짧은 시간에 인생을 꿰뚫는 사람은 천재이지만, 보통 사람도 나이가 들면 약간의 지혜가 생기지요. 이제껏 살아오면서, 시행착오를 통해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기위해 오랜 준비를 거쳐야 했습니다. 대학을 마치고 취직을 하게 되면, 20대 후반에 이릅니다. 우여곡절 끝에 배우자를 만나 아이들 키우며 아파트라도 마련하게 되면 보통 마흔입니다. “제기랄, 벌써 마흔이야” 놀라서 부르짖으며 삶의 의미에 대해 곱씹어보게 됩니다. 언젠가 좀 더 충만한 시간이 있으려니 하며 살아왔는데,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득 책읽기도 싫어지던 오후의 도서관, 한없이 예쁘지만 때로 도망치고 싶던 아이들, 이렇게 살아도 되는건가 싶은 끝없는 일상, TV 폐인이 되어버릴 것같은 무력감... 모두가 그 자체로 삶이었던 겁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처음 살아보는 것이었지요. 다소의 실수는 당연한 것입니다. 나는 감히 마흔까지의 삶을 ‘첫번 째 인생’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열정과 시행착오가 뒤엉킨 시간들, 너무 서툴러서 얼굴이 붉어지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시간들. 이제 나는 생의 오후에 접어들었습니다. 더 이상 햇살은 뜨겁지 않아요. 하지만 해가 지려면 멀었습니다. 너무 따가워서 앞을 볼 수 없던 정오의 햇살이 사라지니, 오히려 가시거리가 길어졌어요. 음전하게 가라앉은 햇살이 안정감있고, 그냥 푸르기만 하던 나뭇잎들에 음영과 표정이 드리워져, 저마다의 빛깔을 띠게 되었습니다. 가을은 가을대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다행히도 평균수명이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원하기만 한다면 또 한 번의 삶을 살아도 좋을 시간이 확보된거지요. 콘베이어 벨트에서 규격화된 삶을 양산하던 산업화시대가 지나고, 창조적인 응용력이 대우받는 지식중심사회가 되었습니다. 2차세계대전 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막 중년으로 접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영향력을 지닌, 첫 번째 고령층이지요. 최근 7080 가요의 리메이크 붐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중년층의 시장성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어정쩡하게 낀세대가 아닌 신인류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운이 좋은 세대입니다. ‘첫번 째 인생’에서 깨달은 것들을 가지고 ‘두번 째 인생’을 살 요건이 갖추어진 세대입니다. 봄과 여름의 아름다움은 결코 가을의 우아함을 따르지 못합니다. 가을의 자신감과 유연함은 가을이 되어야만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나는 이제 나를 압니다. 나의 장점과 단점을 압니다. ‘두 번 째 인생’에서는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은 최소화할 것입니다. 어제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Posted by 탄재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남보다 늦었고 사회진출도, 결혼도 남들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정도 늦은 편이었다.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렇게 늦다 보니
내게는 조바심보다 차라리 여유가 생긴 편인데,
그래서인지 시기에 맞지 않거나
형편에 맞지 않는 일을 가끔 벌이기도 한다.

내가 벌인 일 중 가장 뒤늦고도 내 사정에 어울리지 않았던 일은
나이 마흔을 훨씬 넘겨
남의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결정한 일일 것이다.

1997년 봄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가면서 나는
정식으로 학교를 다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어느 재단으로부터 연수비를 받고 가는 것도 아니었고,
직장생활 십수년 하면서 마련해 두었던 알량한 집 한채 전세 주고
그 돈으로 떠나는 막무가내식 자비 연수였다.

그 와중에 공부는 무슨 공부.
학교에 적은 걸어놓되
그저 몸 성히 잘 빈둥거리다 오는 것이 내 목표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졸지에 현지에서 토플 공부를 하고
나이 마흔 셋에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된 까닭은
뒤늦게 한 국제 민간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얻어낸 탓이 컸지만,
기왕에 늦은 인생,
지금에라도 한번 저질러 보자는 심보도 작용한 셈이었다.

미네소타 대학의 퀴퀴하고 어두컴컴한 연구실 구석에 처박혀
낮에는 식은 도시락 까먹고,
저녁에는 근처에서 사온 햄버거를 꾸역거리며 먹을 때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연배들을 생각하면서
다 늦게 무엇 하는 짓인가 하는 후회도 했다.

20대의 팔팔한 미국 아이들과 경쟁하기에는
나는 너무 연로(?)해 있었고
그 덕에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한두시까지
그 연구실에서 버틴 끝에
졸업이란 것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무모했다.

하지만 그때 내린 결정이 내게 남겨준 것은 있다.
그 잘난 석사 학위?
그것은 종이 한장으로 남았을 뿐,
그보다 더 큰 것은 따로 있다.
첫 학기 첫 시험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
연구실 구석으로 돌아와
억울함에 겨워 찔끔 흘렸던 눈물이 그것이다.

중학생이나 흘릴 법한 눈물을
나이 마흔 셋에 흘렸던 것은
내가 비록 뒤늦게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만큼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반증이었기에
내게는 소중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혹 앞으로도!
여전히 지각인생을 살더라도
그런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손석희 아나운서가 지난 97년부터 2년 동안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겪은 경험을 월간중앙 2002년 4월호‘내 인생의 결단의 순간' 시리즈에 담은 것이다.
 
Posted by 탄재
구본형 변화 경영 연구소에서 온 메일 by 홍승완님

마음은 항상 일과 집중력에 대해 저항하려 든다. 지난 가을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내 마음이 완전히 하얗게 텅 비어 버리는, 병적인 쾌감 속으로 빠져 들어가 창문 밖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모든 것과 하나가 되고 싶은 사랑을 느낀 적이 있었다. 글을 쓰겠다는 시간 내내 이런 상태로 멍하니 앉아서 보낸 적도 많았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나의 의식이 점점 개화되고 있는 거야! 이것이 글쓰기보다 훨씬 중요하며, 또 글쓰기의 목적이 바로 이거 아니겠어!”

나중에 이런 상태에서 빠져 나왔을 때 나는 카타기리 선생에게 내가 보낸 시간에 대해서 말했다. 그는 이렇게 대꾸해주었다.

“오, 그건 그냥 게으름일 뿐입니다. 어서 가서 일하세요.”

[- 나탈리 골드버그(Natalie Goldberg),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Writing down the bones)' 중에서]

요즘 제가 이상했습니다. 회사를 두만 둔지 2달이 지나는 시점입니다. 책 쓰기와 영어 공부 그리고 이직 준비를 잘 해야 하는데, 매사에 집중력이 떨어지고 생산성이 낮았습니다. 아웃풋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잘 할 줄 알았습니다. 생산성이야, 머리가 스마트하지 못하고 전에도 높지 않아 좋아지리라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전 정도는 유지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많아져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기 때문에 집중력이 높아지고 아웃풋 역시 좋아질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허나, 지금 이 시점에서 보면 이전의 반도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고 있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탓할 수 없습니다. 시간은 전보다 많습니다. 좋아하는 이를 만나 마음은 넘칩니다. 주변에는 자극을 주는 꿈벗과 연구원들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부분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가장 큰 문제가 아닙니다. 분명한 목표와 실천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결국, 문제의 원인은 제 자신이었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을 탓했습니다.

내 고민과 방황이 깊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간 관리를 잘 못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을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것에 힘을 분산하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일을 어려운 일이라 미루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을 중요한 것처럼 여기고 그것으로 제 자신을 합리화했습니다.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정면승부를 피하고, 그러면서도 그 승부에서 지기 싫어 다른 일로 그 승부를 감추려 했습니다. 비겁한 짓입니다.

지금의 제 상황과 원인은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바로 ‘게으름’입니다. 그리고 해결책 역시 단순합니다. ‘부지런’입니다. 근면하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거나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근면하지 않은 사람이 목표를 달성하기를 바라는 것은 로또에 당첨되기를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면함이 왜 보편적인 미덕인지 절감합니다.

“승완아,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말자. 게으름을 화장하지 말자. 게으름은 지금의 네게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친구다. 이제 그 친구를 재우고 부지런을 흔들어 깨우자.”
Posted by 탄재